최근 국제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두 가지 뉴스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르비아가 과거 나토 공습으로 훼손된 군사 유적을 허물고 도널드 트럼프 일가의 고급 호텔을 짓기로 했다는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며 미국과의 복잡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언뜻 보기에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 두 사건은, 한 국가가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어떤 역사적 상징과 자존심을 걸고 거대한 국제 정치의 흐름 속에서 고뇌하고 결정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저는 이 소식들을 접하며 우리 시대의 국제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때로는 냉혹한 현실 위에 서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 세르비아의 뼈아픈 선택 과거의 상흔을 지우는 대가

먼저 세르비아의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도 베오그라드의 '옛 군참모본부 단지'는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나토군의 폭격으로 심하게 훼손된 건물입니다. 그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온 이 단지는 단순한 건물이 아닙니다. 세르비아 국민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자, 침략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며, 무너진 국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입니다. 2006년부터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될 만큼, 그 역사적 무게감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뼈아픈 역사의 상징이 트럼프 일가의 고급 호텔과 아파트 단지로 변모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세르비아 의회는 이 단지의 문화유산 지위를 박탈하고 건물을 철거한 자리에 5억 달러 규모의 호텔과 주거단지를 짓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치판에 뛰어들기 전인 2013년부터 이 부지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자마자 이 건물의 문화유산 지위를 박탈하는 움직임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 문건이 위조되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지만, 집권당인 세르비아진보당은 이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여는 것"이며 "트럼프 정부, 미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세르비아산 제품에 3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상황이니, 관계 개선의 필요성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깊은 회의감을 느낍니다. 과연 역사의 상징을 허물고 얻는 '관계 개선'이라는 것이 진정한 국익일까요? 한 국가의 정체성이자 국민적 자부심이 깃든 유적을, 특정 정치인의 브랜드 가치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행위는 단순히 '실리 추구'라는 말로 포장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야권 정치인의 비판처럼, "저항의 상징, 산산조각이 난 국민·무너진 국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증거"를 그저 트럼프를 기쁘게 하기 위한 "사치물"로 바꾸는 것은 역사를 돈과 맞바꾸는 듯한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세르비아 정부는 현재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우호적 관계를 다져야 하는 복잡한 외교적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국의 가장 뼈아픈 역사의 한 조각을 지워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 과연 현명한 길이었는지, 시간이 흘러도 논란은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한미 동맹의 복잡한 방정식 핵잠수함이라는 시험대

한편, 우리 대한민국 역시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복잡한 외교적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발표될 예정이었던 '공동 팩트시트'의 공개가 지연되면서 '핵추진 잠수함' 추진 문제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대통령실은 "선체 건조와 원자로 건설은 국내에서 하고 거기에 맞는 농도의 연료를 미국에게서 받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며 미국의 '필리조선소'를 언급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정상 간 대화에서는 한국에서 짓는 것으로 논의한 사안"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잠수함을 얻는 것을 넘어, 우리의 안보 수요에 맞는 독자적인 개발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지요.
핵잠수함의 핵심은 원자로와 연료입니다. 미국의 대형 핵추진잠수함인 '버지니아급'은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이 필요하지만, 우리 정부는 "한국 안보 수요에 맞고 한국의 수역, 지형에 맞는 모델"을 추진하며 "농축 우라늄 50% 이내 모델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즉, 한국이 개발 중인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맞는 연료를 미국에서 공급받는 형태로 기술 협력을 이끌어내려 하는 것입니다.
세르비아의 사례와 비교하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에 대한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단순히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한' 거래가 아니라, 동맹이라는 큰 틀 안에서 우리의 이익과 역량을 극대화하려는 정교한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도 수많은 협상과 조율, 그리고 어쩌면 보이지 않는 양보가 있었을 것입니다. 국제 관계에서 '공짜 점심'은 없으니까요. 미국의 일부 부서에서 팩트시트 문안 조율에 시간이 걸린다는 소식은, 이 모든 과정이 얼마나 치밀하고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우리는 안보적 필요성을 충족시키면서도, 기술적 자주성을 최대한 지켜내려는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감수하는 그림자 트럼프 시대의 국제 역학

세르비아와 한국의 사례는 트럼프라는 인물이 국제 무대에 미치는 영향력, 그리고 각국이 그 영향력 속에서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교 방식은 종종 '거래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동맹 관계보다는 개별 사안에서의 즉각적인 이득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죠. 이러한 기조는 그가 재집권할 경우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세르비아는 관계 개선과 경제적 이득이라는 단기적 실리를 위해 국가적 상징이자 아픈 역사를 지우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처한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것이 장기적으로 국가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눈앞의 이득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반면 한국은 핵추진 잠수함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두고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우리 지형과 안보 환경에 맞는 독자적인 기술 개발과 운용 권한을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잠수함 건조 장소를 국내로 못 박고, 필요한 연료만 미국에서 공급받겠다는 방침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선 자주국방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세르비아의 선택과는 사뭇 다른, 자국의 주도권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치밀한 전략적 접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르비아가 역사를 허물고, 우리가 복잡한 협상과 기술적 절충을 감수하는 이 모든 과정은 '국익'이라는 대의명분으로 포장됩니다. 하지만 과연 모든 '국익'이 동일한 가치를 지닐까요? 단기적인 경제적 이득이나 정치적 관계 개선이 장기적인 국가 정체성이나 자주성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을까요? 저는 이런 일련의 흐름이 단지 세르비아나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 여러 나라가 강대국의 변화무쌍한 외교 정책, 특히 지도자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휘둘리거나, 혹은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우리는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아픔을 지우고 미래의 관계를 도모하려는 세르비아, 그리고 안보 강화와 자주성 확보를 동시에 추구하는 한국. 이들의 이야기는 국제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국가에게 던지는 중요한 화두입니다. 진정한 국익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그를 위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고, 또 어디까지 지켜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코 간단하지 않으며, 끊임없는 성찰과 현명한 판단을 요구할 것입니다.